은행나무 밑을 지나다 / 임재정
언덕에 나앉은 몸을 채근하는 갈바람 소리를 듣습니다.
나는 소름이 어디에 숨어 여름을 나는지 알지 못하므로
말없이 긴 해그림자를 좇습 니다
바람이 노란 몸 드러내며 은행나무 아래를 지납니다
소름이 어떻게 마음보다 먼저 소슬한지 알지 못하므로,
한 해 한 해 닷말씩 구린 열매를 쏟아내는 나무처럼
나는 붙박히지 못합니다 갈바 람 소리를 듣습니다
저 아래 우묵한 곳으로 고인 것들이 색깔을 잃어갑니다
나는 흘러갈 뿐입니다 저기를 지날 땐 나도 노랗겠지요
소리없이 등 뒤의 세계가 닫히고 있습니다
2012 . 10 . 31 아산 현충사에서 ~